마드모아젤은 66년간 발행되었다. 1935년에 창간되었고, 1959년 샘 뉴하우스가 스트리트 & 스미스에서 인수했다. 전성기에는 실비아 플라스, 조이스 캐럴 오츠, 데이비드 세다리스, 모린 다우드를 실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자기 자리를 잃은 잡지가 되었다. 너무 커서 전위적일 수 없고, 너무 확립되어 있어서 새로울 수 없었다. '새시화' 추진은 더 젊은 잡지의 목소리를 빌렸고, 대중 시장으로의 전환은 슈퍼모델을 표지에 올렸다. 둘 다 자리 잡지 못했다.

떠나기 전에 잠시 흑자로 돌아서게 이끌었던 전 편집장 엘리자베스 크로는 솔직하게 말했다. '비결은 아무도 마드모아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다는 거예요. 저는 정말 아이디어가 바닥났고, 제임스 트루먼도 하나 있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그들은 러키에 정말 들떠 있었어요.' 러키는 콘데 나스트 자체의 쇼핑 잡지 신생 사업으로, 회사가 공언한 미래였고, 마드모아젤의 젊은 여성 독자층이 바로 그 대상이기도 했다. 마리 클레어와 제인이 외부에서 같은 공간을 압박했다.

2001년 10월 1일, 콘데 나스트는 이 잡지의 폐간을 발표했다. 대변인 모리 펄은 약한 광고 환경을 이유로 들었고, 이는 9월 11일 공격으로 악화되었다. 업계 관측통들은 이 잡지가 수년간 수익성이 없었으며, 2001년 첫 8개월 동안 광고 지면이 이미 거의 18%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발행부수는 여전히 110만 부였다. 회사가 유지하기보다 러키에 넘기기로 선택한 독자층이었다.

콘데 나스트는 잡지를 폐간하고 독자층을 러키에 넘겼다. 2001년 광고 지면은 거의 18% 감소했고, 이 잡지는 수년간 수익성이 없었다.

잡지는 자기 정의를 잃었다. 더 광택 있는 경쟁자들(마리 클레어, 코스모폴리탄)과 목소리 중심의 신생 잡지들(새시의 후예들, 제인) 사이에서 압박을 받으며, 차례로 각각을 모방했지만 어느 것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콘데 나스트 자체의 포트폴리오가 결정을 내렸다. 러키는 바로 마드모아젤의 독자층을 위한 성장 베팅이었고, 모회사는 옛 잡지의 미래를 더 이상 구상하지 않았다.

2001년 9월의 광고 붕괴는 방아쇠였지 원인은 아니었다. 이 잡지는 수년간 수익성이 없었고, 공격 전에 이미 광고 지면이 거의 18% 감소해 있었다.

잡지는 독자를 잃어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자기 정의를 잃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소유주의 새 잡지가 당신의 독자층을 겨냥하는 순간, 당신의 발행부수는 그저 인계 명단일 뿐이다.

콘데 나스트는 폐간이 러키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트루먼은 불과 3주 전에 러키를 위한 자선 행사에 참석했었다. 엘리자베스 크로는 소유주가 잡지를 잠시 접어두었다가 나중에 강력한 편집자와 함께 되살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편집장 맨디 노우드는 눈물로 소식을 받았다. 한때 플라스를 실었던 소설 지면은 이미 조용히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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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Mademoiselle Magazine to Cease Publication — The Washington Post (Oct 2, 2001) washingtonpost.com
  2. How Did Mademoiselle Lose Girls? It Couldn't Keep Up in a Sassy Age — The New York Observer (Oct 2001) obser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