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크하우스 헤르슈타트는 1955년 이반 다비드 헤르슈타트가 쾰른에서 설립했으며, 산업가 헤르베르트 크반트와 한스 게를링의 후원을 받았다. 이 은행은 공격적인 외환 거래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고, 1973년에는 자산 20억 마르크 이상으로 독일에서 35번째로 큰 은행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 기반은 4,400만 마르크에 불과했다 — 베팅하던 규모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1973~197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면서 통화 가치는 극심하게 변동했다. 헤르슈타트의 트레이더들은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대규모로 베팅했다. 그러나 달러는 오히려 폭락했다. 1974년 6월까지 은행은 외환 손실 4억 7,000만 마르크를 누적했다 — 자본의 열 배가 넘는 규모였다. 손실은 은행 규모에 비추어 치명적이었지만, 진정한 재앙은 붕괴의 시점이었다.
1974년 6월 26일, 독일 은행 규제 당국은 현지 시간 16시 30분 — 뉴욕 시간 오전 10시 30분 — 에 헤르슈타트를 폐쇄했다. 여러 거래 상대방 은행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헤르슈타트에 이미 독일 마르크를 지급했고, 그 대가로 같은 날 늦게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던 미국 달러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헤르슈타트는 달러를 인도하기 전에 문을 닫았고, 그 은행들은 거래의 반대편만 떠안게 되었다. 외환 거래의 결제 리스크를 뜻하는 '헤르슈타트 리스크'라는 용어가 은행업 용어로 자리 잡았고, 이 사건은 바젤 은행감독위원회의 창설을 촉발했다.
그 대가
규제 당국은 결제가 진행 중인 시점에 은행을 폐쇄했다. 거래 상대방들이 마르크를 지급한 뒤 달러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그 결과 헤르슈타트 리스크와 바젤 위원회가 탄생했다.
왜 일어났나
헤르슈타트의 트레이더들은 달러가 마르크 대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대규모 일방 베팅을 했다. 달러가 오히려 하락하자 은행은 4억 7,000만 마르크를 잃었다 — 자본의 열 배가 넘는 손실이었다.
은행은 거래 규모에 비해 위험할 정도로 자본이 부족했다. 자산 20억 마르크에 자본은 4,400만 마르크뿐이었기에, 단 한 번의 잘못된 베팅으로 완전히 파산했다.
폐쇄 시점 — 유럽 시장이 마감한 뒤 미국 시장이 마감하기 전 — 은 헤르슈타트에 마르크를 이미 지급했지만 달러는 받지 못한 거래 상대방들에게 결제 리스크를 만들어냈다.
교훈
자본보다 더 큰 금액을 단일 시장 방향에 베팅하는 은행은 은행이 아니라 도박이다. 자본 4,400만 마르크에 4억 7,000만 마르크의 손실을 입은 헤르슈타트는 은행을 파산시켰고 새로운 리스크 범주를 만들어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Herstatt Bank — Wikipedia en.wikipedia.org
- NYT — Failure of Herstatt Disturbs Banking (1974) nytimes.com
- Market Histories — Herstatt Bank: How Cologne Created Settlement Risk markethistori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