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비강은 1775년 장프랑수아 우비강이 파리에서 설립했으며, rue du Faubourg Saint-Honoré의 한 가게에서 장갑, 향수, 신부 부케를 팔았다. 수십 년 만에 유럽에서 가장 명망 있는 향수 하우스가 되었다. 나폴레옹과 조제핀 황후, 빅토리아 여왕,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의 조향사였다. 1882년 조향사 폴 파르케는 최초의 푸제르 향수이자 하나의 향수 계열 전체를 정의한 이정표인 Fougère Royale을 만들었다.
2세기에 걸친 왕실의 후원과 혁신도 우비강을 재정적 문제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 회사의 공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당했고, 이후의 향수들은 원조의 명성을 되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93년까지 우비강은 뉴욕에서 챕터 11 파산 상태에 있었으며, 자산 2,300만 달러에 대해 부채 5,250만 달러를 신고했다.
1994년 르네상스 코스메틱스라는 신생 기업이 우비강 향수 12종과 그 조향법, 그리고 우비강이라는 이름에 대한 라이선스를 인수했다. 르네상스는 우비강이 2세기 동안 차지했던 명품 유통 경로가 아니라 드러그스토어와 할인점을 통해 이들을 판매했다. 우비강은 곧 르네상스를 상대로 향수를 "희석"하고 브랜드를 오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르네상스는 1999년 자체 파산을 신청하고 소멸했다. 원래 조향법과 거리가 먼 향수들이 우비강이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판매되었고, 나폴레옹의 궁정에 향기를 입혔던 브랜드는 최고 입찰자에게 넘어갔다.
무엇을 치렀나
우비강의 5,250만 달러 부채는 브랜드를 희석시키고 매각으로 이어진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했으며, 218년의 유산을 끝냈다.
왜 일어났나
챕터 11은 우비강을 현금도 협상력도 없는 상태로 남겼다. 르네상스 코스메틱스와의 라이선스 계약은 218년에 걸쳐 구축한 브랜드의 헐값 매각이었다.
르네상스는 우비강을 명품 향수점에서 드러그스토어 진열대로 옮겼고, 브랜드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독점성을 지워버렸다. 할인 체인에서 한 번 팔린 향수는 명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
희석 소송은 우비강이 라이선스 계약에서 자사 조향법과 품질 기준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했음을 보여주었다. 즉 자사 제품을 보호할 수 없었다.
1999년 르네상스 자체의 파산은 우비강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파트너 자체가 지속 불가능했음을 입증했다. 브랜드는 두 번이나 좌초되었다.
교훈
수백 년 된 브랜드도 잘못된 파트너에게 라이선스하면 파괴될 수 있다. 우비강은 고객을 잃지 않았다. 르네상스가 제품과 평판을 희석시켰고, 어떤 부활도 둘 중 어느 것도 되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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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 Houbigant Parfum en.wikipedia.org
- cntraveler.com cntravel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