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는 소박하고 비용 의식이 강한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가구 소매업체로 성장했다. 1994년까지 이 체인은 유럽 전역에 매장을 운영하며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가치를 주제로 한 영상과 연설에 등장하는 브랜드의 공식 얼굴이었다.
1994년, 스웨덴 파시스트 페르 엥달의 개인 편지들이 공개되었다. 편지들은 캄프라드가 1942년 16세의 나이로 엥달의 친파시스트 조직인 신스웨덴운동에 가입했으며 적어도 1945년 9월까지 활동을 계속했음을 보여주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불렀지만, 브랜드에 입힌 타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이 사건은 국제적으로 보도되었고, 이런 폭로에 대한 브랜드 위기 대응 계획이 없었던 이케아는 창업자의 과거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캄프라드는 자신의 저서 《디자인으로 이끌다(Leading by Design)》에서 두 개의 장을 이 논란에 할애했다. 회사는 계속 성장했지만, 이 사건은 이케아의 가치 기반 브랜딩을 영구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2018년에 사망한 캄프라드는 대중의 인식 속에서 완전히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으며, 이후 몇 년간 이케아의 내부 문화 검토에서도 1994년의 위기가 브랜드의 투명성 관행에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계속 언급되었다.
무엇을 치렀나
편지들이 캄프라드의 파시스트 과거를 드러내자 이케아의 가치 브랜딩은 무너졌다.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언론이 사건을 통제했고, 이는 신뢰의 영구적 손실을 초래했다.
왜 일어났나
이케아는 창업자의 파시스트 과거를 다루지 않은 채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구축했다. 과거가 드러났을 때, 브랜드는 그 인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할 수 없었다.
편지들이 출판되었을 당시 이케아에는 위기 커뮤니케이션 계획이 없었다. 회사는 이야기를 주도하는 대신 반응했고, 언론이 사건을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캄프라드의 사과는 대중적 인정이 아닌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편지였다. 회사에는 과거를 인정하면서도 그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제도적 대응이 부족했다.
교훈
창업자의 개인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축된 브랜드는 언론보다 먼저 그 이야기의 위험 요소를 점검해야 한다 — 오늘 판매하는 가치는 결코 공개하지 않은 과거를 지울 수 없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The Guardian: Ingvar Kamprad obituary theguardian.com
- The New Yorker: House Perfect — the IKEA story newyorker.com
- BBC News: Ikea founder Ingvar Kamprad's Nazi ties 'went deeper' 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