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사블랑카스는 1971년 엘리트 모델 매니지먼트를 설립하고 모델링을 보호자가 동행하는 예의범절에서 셀러브리티로 바꿔놓았다. 브링클리가 먼저였고, 이어 에반젤리스타, 크로퍼드, 캠벨, 시퍼, 뷘헨, 클룸이 뒤따랐다. 그가 물러날 무렵 이 에이전시는 4개 대륙에 걸쳐 500명의 모델을 보유하고 연간 1억 달러의 계약을 성사시키고 있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하루 1만 달러 이하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 말은 엘리트의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었다.
그러다 그 시대가 끝나고 소송이 밀려왔다. 광고 캠페인과 표지에서 슈퍼모델을 셀러브리티가 대체했고, 카사블랑카스 자신의 신화 만들기가 불러들인 모델 지망생들의 물결이 요율을 끌어내렸다. 1999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엘리트 유럽의 사장이 어린 모델에게 부적절한 제안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며 이름에 흠집이 났다. 미국에서는 장기간 진행된 집단 소송이 수수료 담합을 주장했고, 전 직원 한 명은 사무실 연기가 건강을 해쳤다며 430만 달러의 판결을 받아냈다.
2004년 2월, 뉴욕의 엘리트 모델 매니지먼트 코프는 늘어나는 법적 분쟁 비용을 이유로 챕터 11을 신청했다. 엘리트 NY의 창립자인 모니크 필라드는 "우리는 맞서 싸우고 있다. 이 터무니없는 소송들에 지쳤다. 이제 우리는 사업 운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6개월 후 이 사업은 플로리다 개발업자 에디 트럼프와 줄스 트럼프의 크리에이티브 월드에 440만 파운드에 매각되었다. ID 모델스의 사장 파올로 잠폴리와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을 제치고 낙찰받은 것이다. 스위스 모회사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비용은 얼마였나
소송에 맞서기 위해 챕터 11을 신청한 뒤, 6개월 후 경쟁자들을 제치고 크리에이티브 월드에 440만 파운드에 매각되었다.
왜 일어났나
이 에이전시는 슈퍼모델 경제를 위해 세워졌다. 셀러브리티가 표지를 차지하자 계약 엔진은 가격 결정력을 잃었다.
수수료 담합 집단 소송과 430만 달러 판결은 줄어드는 사업 위에 법적 비용을 쌓았다. 파산 신청은 파산이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소송 전략이기도 했다.
1999년의 폭로는 업계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바로 그 시점에 모델들은 어차피 더 작은 부티크 에이전시로 옮겨가고 있었다.
교훈
자신을 만들어낸 시대를 소유할 수는 있어도 그 다음 시대를 소유할 수는 없다. 시장이 돌아섰을 때 엘리트는 전성기의 소송들을 떠안았고, 그것을 갚을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후
크리에이티브 월드는 미국 에이전시를 잠시 운영했고, 스위스가 보유한 브랜드는 새로운 소유 구조 아래에서 계속되었다. 2000년에 지분을 매각했던 카사블랑카스는 스카우트이자 고문으로 다시 기웃거리다 2013년 사망했다. 슈퍼모델을 발명한 그 남자는 그 기계보다 10년을 더 살았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Elite New York files for bankruptcy — The Sydney Morning Herald (Feb 16, 2004) smh.com.au
- John Casablancas obituary — The Guardian (Jul 24, 2013) theguardian.com
- John Casablancas dies at 70; transformed modeling business — Los Angeles Times (Jul 22, 2013) latimes.com
- Elite Model Management is sold to the Trumps for £4.4 million — British Vogue (Aug 26, 2004) vogue.co.uk